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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학실험실 지금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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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정체성과 불멸에 관한 몹시 지루한 대화: 아주 그럴 듯한 상상에서 유랑 급진주의까지</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27 Aug 2008 00:22: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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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학실험실 지금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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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정체성과 불멸에 관한 몹시 지루한 대화: 아주 그럴 듯한 상상에서 유랑 급진주의까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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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생각한다. 고로 너는 존재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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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color=#d41a01&gt;&lt;FONT face=Garamond&gt;&lt;FONT color=#333333&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나는 생각한다. 고로 너는 존재한다.&lt;br /&gt;&lt;br /&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Garamond&gt;&lt;FONT color=#333333&gt;한 피조물에게서 사고 현상이 출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 피조물이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선천적 유사성 반응들을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지적 피조물이 존재해야 한다. 만일 타자의 유사성 반응들이 자아의 그것들과 충분히 비슷하지 않다면, 자아가 도대체 어떤 자극에 응답하여 말하고 생각하는지 말할 수 있다. 그 다음, 한 피조물의 반응들이 말 또는 생각으로 간주될 수 있기 위해서, 그는 특수한 자극에 지향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극 개념 즉 객체 개념, 나아가 객관성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nous/index.php?pl=140&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전문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주관적인 것의 신화와 타자&lt;br /&gt;&lt;br /&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Garamond&gt;&lt;FONT color=#333333&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nownhere.com/attach/1/496283.gif&quot; height=&quot;170&quot; width=&quot;150&quot; /&gt;&lt;/div&gt;화자 소리가 언어가 되기 위한 규범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그 규범의 원천은 일정한 방식으로 해석되기를 의도하는 화자의 의도에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해석되기를 의도하는 나의 의도이지, 내가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르려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화자가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이 통상 해석되는 방식대로 해석되기를 의도하기 때문이다. 화자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해석되기를 의도하는 의도로부터 언어가 발생한다면, 말하는 자아는 자기를 해석하는 타자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언어의 사회성은 바로 여기 즉 타자에 의해 올바르게 해석되려는 자아의 욕구에서 출현한다. 사고와 인식은 본질적으로 언어적이라는 의미에서 인식의 사회성 또한 여기에서 발생한다. 인식은 타자에게 다가서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nous/index.php?pl=129&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전문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일인칭 인식론의 실패&lt;br /&gt;&lt;br /&gt;
&lt;P align=justify&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nownhere.com/attach/1/182067.gif&quot; height=&quot;210&quot; width=&quot;150&quot; /&gt;&lt;/div&gt;&lt;FONT face=Garamond&gt;&lt;FONT color=#333333&gt;전통 인식론의 패러다임은 내 마음에 주어진 자료(주관적 앎)로부터, 외부세계에 대한 앎(대상에 관한 앎, 객관적 앎)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타자 마음에 관한 앎(상호주관적 앎)으로 나아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패러다임을 나는 “선형 인식론”(linear epistemology) 또는 “일인칭 인식론”(first-person epistemology) 이라 부른다. 선형 인식론은 주관표상으로부터 객관세계를 구성하려 하지만, 타자를 애초부터 배제하는 한, 주체와 세계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심연이 놓이게 되고, 결국 그 인식론은 유아주의(또는 유아론)로 함몰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인식론자들은 타자를 요청하게 된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타자의 인식론적 중요성이 발견되는 과정을 개괄하고자 한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규칙-따르기 논제는 생각과 말이 필연적으로 타자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인식의 사회성은 규칙-따르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놓여 있을 것이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nous/index.php?pl=127&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전문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경험주의가 잘못 걸어온 길&lt;br /&gt;&lt;br /&gt;&lt;FONT color=#9b18c1&gt;1. 들어가는 말&lt;/FONT&gt;&lt;br /&gt;&lt;FONT color=#9b18c1&gt;2. 엠페도클레스에서 아퀴나스까지&lt;/FONT&gt;&lt;br /&gt;&lt;FONT color=#9b18c1&gt;3. 로크에서 흄까지&lt;/FONT&gt;&lt;br /&gt;&lt;FONT color=#9b18c1&gt;4. 선형 인식론&lt;/FONT&gt;&lt;br /&gt;&lt;FONT color=#9b18c1&gt;5. 나오는 말&lt;/FONT&gt;&lt;br /&gt;
&lt;P align=justify&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nownhere.com/attach/1/212927.jpg&quot; height=&quot;162&quot; width=&quot;117&quot; /&gt;&lt;/div&gt;&lt;FONT face=Garamond&gt;&lt;FONT color=#333333&gt;경험주의는 오직 경험만이 인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인식론의 한 입장이다. 합리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경험주의는 인식이론의 챔피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경험주의는 여태 잘못된 길을 걸어왔으며 이 이론은 결국 인간 인식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경험주의의 기본 패러다임을 특징지었던 엠페도클레스의 방출이론을 소상하게 설명한 후, 로크의 관념이론을 거쳐 흄의 회의주의까지 경험주의의 역사를 개괄할 것이다. 근세 경험주의는 회의주의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정은 현대 경험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경험주의를 전통 인식론의 전형적 패러다임으로 규정한 다음, 전통 인식론에서 무시했던 요소(타자)를 지적할 것이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nous/index.php?pl=64&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전문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동향과전망</category>
			<author>(옥시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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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Apr 2007 03:30: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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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메멘토 이천오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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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align=justify&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205&quot;&gt;200512: 창덕궁, 박물관, 노화, 칸타타, 선지자&lt;/a&gt;&lt;br /&gt;&lt;br /&gt;어머니와 혜선이와 함께 서울구경을 했다. 쌈지길을 둘러 본 뒤, 사동면옥에서 점심을 먹었다. 청계천과 성공회 성당을 둘러 본 뒤, 이촌으로 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람객들이 긴 행렬로 늘어서서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폐장 시간을 넘겨 쫓겨나듯 박물관을 나왔다.&lt;br /&gt;&lt;br /&gt;나는 점차 자본주의적 욕망을 한참 고양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내가 노화되고 있다는 증거인가?&lt;br /&gt;&lt;br /&gt;향린교회의 칸타타는 찬양대의 규모와 달리 아주 웅장하고 거룩했다. 국악찬양을 곁들인 성탄예배는 내 마음을 매우 거룩하게 만들었다. &lt;br /&gt;&lt;br /&gt;위원회 성탄절 오찬. 30년 동안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닌 선지자 할아버지 동영상을 보니 눈물이 핑돈다. Why Two Korea? 그의 외침은 나를 매우 각성하게 하였다. &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204&quot;&gt;200511: 우산, 자코벵, 은행, 에케, 슈샤&lt;/a&gt;&lt;br /&gt;&lt;br /&gt;휘날리는 비, 바람, 낙엽.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lt;br /&gt;&lt;br /&gt;청계천의 노란 은행 잎들이 바람에 날려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창가를 멍하게 바라 본다. 이 아름다운 풍경&lt;br /&gt;&lt;br /&gt;에케가 샌드위치와 커피와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다. &lt;br /&gt;&lt;br /&gt;슈샤와 짧은 대화.&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203&quot;&gt;200510: 고구마, 한국사상사, 좀비, 리드미, 코즈니, 주식, 쇼걸, 공을기객잔, 청년 헤겔, 비트겐슈타인, 연시, 인 국장, 그림자, 스타벅스&lt;/a&gt;&lt;br /&gt;&lt;br /&gt;주인 할머니가 나를 깨웠다. 삶은 고구마를 마루에 가져다 놓았다. 일어나 빨래 널고, 의성에서 보내온 고구마를 씻고, 머리를 감았다. 무척 춥다. &lt;br /&gt;&lt;br /&gt;이문규 교수 연구실에서 장대익, 이병덕, 김한승, 최훈, 이해훈 선생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나는 한국사상사에 길이 남을 사진을 찍겠다며 셔터를 눌렀다. 김한승 선생의 차를 타고 이병덕, 이해완 선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이병덕 선생과 추론주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lt;br /&gt;&lt;br /&gt;좀비세계는 가능한가, 우리 세계는 좀비세계인가 등에 관한 열린 토론. 나의 지루하고 조악한 질문들. 그리고 뒤풀이. 박병철 선생과 여영서 선생이, 더 늦게는 이중원 선생이 합류했다. 한국 논리교육의 스캔들과 부조리, 분석철학의 정체성, 대안과 전망들에 대해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했다.&lt;br /&gt;&lt;br /&gt;리드미와 함께 공덕역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의 책을 한 권 받았다. &quot;인터넷시대의 글읽기, 블로그시대의 글쓰기.&quot; 인근 아파트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문학자의 생존 문제를 이야기했다.&lt;br /&gt;&lt;br /&gt;롯데백화점과 영마트, 코즈니, 명동 등을 쏘 다였다. 3000원 짜리 폴라와 10000원 짜리 겨울 코트, 800원짜리 양말.&lt;br /&gt;&lt;br /&gt;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돈을 많이 불려서 연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부디 망하진 말길. &lt;br /&gt;&lt;br /&gt;김 박사와 KINTEX에서 한국전자전을 관람했다. 화려한 전자제품들, 아름다운 도우미들, 그리고 군데군데 쇼걸과 매혹적인 전자현악기 연주가들. &lt;br /&gt;&lt;br /&gt;공을기객잔에서 명조요리를 먹었다. 앞 테이블에 앉은 여인의 단호하고 야무진 표정에 나는 눈이 팔렸다. 카운터에서 그녀를 가까이서 보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듯하더니 내 옆에 진열된 도자기를 보았다. 나는 말을 걸고 싶었다. 결국 무언. 사무실에 돌아온 후에도 아쉬움 때문에 10분간 일을 못했다. 잠시 눈을 감은 후 다시 일을 시작했다. &lt;br /&gt;&lt;br /&gt;박이문 선생께 연락을 취했다. 80이 내일 모레인데 여전히 청년헤겔처럼 말씀하신다. &lt;br /&gt;&lt;br /&gt;이승종 선생의 연구실 앞에 서니 그가 강의를 마치고 문 앞으로 다가왔다. 악수를 한 후 그의 연구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낡은 책꽂이엔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책들이 가득하다. 연구실을 나와 캠퍼스를 산책했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담쟁이들은 벽과 함께 붉어지고 있었다. 한 시간의 산책 후 그는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lt;br /&gt;&lt;br /&gt;새문안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연시를 사서 먹었다. &lt;FONT color=#ff7635&gt;붉고 단 연시처럼 붉고 단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lt;/FONT&gt;&lt;br /&gt;&lt;br /&gt;인 국장께서 특강을 하러 우리 위워회에 왔다. 강의 도중에 나를 언급하셨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lt;br /&gt;&lt;br /&gt;주문한 고구마 한 박스가 도착했다. 나의 밥, 나의 간식.&lt;br /&gt;&lt;br /&gt;그림자와 서울역에서 만났다. 서울역에서 덕수궁을 지나 청계천까지 걸었다. 복잡한 청계천을 뚫고 온 인사동. 사동면옥에서 저녁을 먹은 후 경복궁역에서 전철을 탔다. 충무로에서 그와 헤어졌다. 부디 장차 삼성전자 사장이 되어 나를 구해다오. 그는 그것을 하고자 한다면 할 수도 있는 녀석이다.&lt;br /&gt;&lt;br /&gt;ㅇㅇ과 교보문고 앞에서 만났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계속 울었다. 그녀의 눈물을 계속 바라봐 주었다. 서울역까지 그녀와 함께 걸었다. 편히 쉬세요.&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95&quot;&gt;200509: 열린 민족주의, 밤나무, 북촌, 단연, 노스텔지어, 세라, 번개산책, 러브레터, 변리사들, 폭우, 꽃무릇, 블랑쉬, 청계천, 야간등산 &lt;/a&gt;&lt;br /&gt;&lt;br /&gt;박종덕 팀장의 섬세한 자기반성과 열린 민족주의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분이다.&lt;br /&gt;&lt;br /&gt;자전거로 북촌 나들이를 했다. 골목과 한옥들, 계단들, 그리고 대저택들. 방으로 돌아와 고구마를 깍아 먹고 잠에 들었다.&lt;br /&gt;&lt;br /&gt;새벽에 단연과 채팅을 했다. 마음이 약하고 여린 소녀.&lt;br /&gt;&lt;br /&gt;구청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았다. 첫 강사의 강의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훈련을 마친 뒤 인천으로 갔다. 송도 노스텔지어에서 홍차를 마셨다. 비가 내렸다.&lt;br /&gt;&lt;br /&gt;밤 늦게까지 야근하는 중 세라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선과 무선으로 아주 오래, 너무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취해 버렸다.&lt;br /&gt;&lt;br /&gt;아무 것도 하지 않은 추석 휴일. &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90&quot;  target=_blank&gt;소년 이츠키처럼 너에게 내내 남아 있을 거야&lt;/a&gt;, 를 포스트하니 정오가 다 되었다. 마크톱과 번개 산책을 했다. 2시간 정도 산책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lt;br /&gt;&lt;br /&gt;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보았다. 나는 소년 이츠키로 돌아갔다. 그리고 히로코의 슬픈 인사를 듣는다. 그동안 잘 있었어요? 나는 잘 있어요. 그녀의 사랑에 나는 깊은 그리움에 젖는다. &lt;br /&gt;&lt;br /&gt;훈과 환을 만났다. 둘은 내가 군에 있을 때 면회왔던 유일한 고교 친구들이다. 그들은 이제 모두 변리사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한결 같은 표정으로 나는 반겨줘서 고맙다. 훈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그는 늘 그렇게 그늘이 져 있었다. 나는 고교시절 그를 몹시 좋아했다.&lt;br /&gt;&lt;br /&gt;빌딩 사이로 가을 폭우가 내리고 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분다. 우산과 내 블랑쉬가 날아갈 것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 차들이 진입했고 신호등은 빨간등이다. &lt;br /&gt;&lt;br /&gt;지난 주말 선운사와 고창을 여행한 마크톱은 꽃무릇과 메밀꽃을 부럽도록 자랑했다. 가한과 대화했다. 꽃무릇처럼 진하고 메밀처럼 순한 가한의 생애.&lt;br /&gt;&lt;br /&gt;자전거 출근을 기념으로 청계천을 달리다. 광통교를 지나 무학교까지. 광통교의 옛 기둥과 문양이 세겨진 바위들, 정조의 수원성 행차를 옮겨 놓은 아주 긴 타일 벽화, 돌다리에 박아 놓은 작은 불빛들. 마크톱과 통화를 했다. 차분하고 여린 그의 목소리.&lt;br /&gt;&lt;br /&gt;자전거를 사러 신사에 갔다. 네오바이크 블랑쉬 140. &lt;br /&gt;&lt;br /&gt;로디와 야간등산을 했다. 집결지는 사당, 주최자는 7580산악회. &lt;FONT color=#ff7635&gt;아름다운 서울 야경과 싱싱한 바람들, 흔들리는 랜턴 불빛들, 고독에 언제나 강한 바위들.&lt;/FONT&gt;&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94&quot;&gt;200508: 검은숲, 송하석, 최원배, 김밥, 솔잎차, 살진이, 폐가, 귀뚜라미, 러닝머신&lt;/a&gt;&lt;br /&gt;&lt;br /&gt;종로3가에서 검은숲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가벼운 포옹을 했다. &lt;br /&gt;&lt;br /&gt;송하석 선생은 나를 계속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가 너무 멋지게 보인다고 주사를 했다. 나는 장인 어른, 이라고 답해 주었다.&lt;br /&gt;&lt;br /&gt;최원배 선생의 열정과 정성과 헌신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집에 도착한 나는 완전히 소금 절인 배추다. 논문의 한두 문단을 읽은 후 쓰러져 자버렸다.&lt;br /&gt;&lt;br /&gt;김밥을 사서 경희궁의 아침 내 누각 계단에 앉았다.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은 맑고 산은 가까웠다. 아름다운 날씨 쓸쓸한 마음. &lt;br /&gt;&lt;br /&gt;해방절. 광화문에서 기념식이 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방으로 돌아왔다. 신촌에서 란과 차를 마셨다. 해남에서 가져온 솔잎차. &lt;br /&gt;&lt;br /&gt;살진이를 목욕시켰다. 이 놈은 나를 몹시 두려워했고, 서럽게 울어대었다. &lt;br /&gt;&lt;br /&gt;내 방은 엉망이다. 폐가 또는 쓰레기장. 이곳을 헤집고 잠을 자야 했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매우 쓸쓸하다. 매우 피곤하다. 나는 계속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두렵다.&lt;br /&gt;&lt;br /&gt;귀뚜라미가 우는 밤. 약속대로 신 선생이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나의 답가.&lt;br /&gt;&lt;br /&gt;러닝머신을 맨발로 100분동안 달렸다. 새벽녁이 될 때까지 편지를 하나 썼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82&quot;&gt;200507: 선풍기, 상자, 공임순, 김상봉, 대한문, 그릇, 첼시, 마야, 꿈&lt;/a&gt;&lt;br /&gt;&lt;br /&gt;무더운 일요일. 소나기가 내렸다. 빨래를 급해 겆었다. 빗물에 발을 적셨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선풍기만 계속 돌아간다.&lt;br /&gt;&lt;br /&gt;서울. 뜨거운 도시 속 나의 상자. 시장에 가 열쇠를 복사하고 과일을 사고 머리칼을 짧게 깎았다.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깊이 잠 들었다.&lt;br /&gt;&lt;br /&gt;공임순 선생은 즐거운 분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가 좋다.&lt;br /&gt;&lt;br /&gt;대한문 앞에서 만난 란. 정동극장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그는 무거워 보였다. 누군가 미치도록 사랑해야 하거나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사랑받아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 객체도 주체도 될 수 없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이 직감을 곧장 알아차렸다.&lt;br /&gt;&lt;br /&gt;인사동에서 그릇 세 개를 샀다. 하나는 과일 담는 그릇, 다른 하나는 과자 담는 그릇, 나머지 하나는 소품 담는 그릇. 아주 예쁜 옹기 그릇이다. &lt;br /&gt;&lt;br /&gt;말똥가리와 첼시와 함께 이별여행을 했다. 인사동을 좀 거닐다 점심을 먹고 진선북카페에서 빙수와 커피를 마신 뒤 경북궁을 걸었다. 우리는 계속 비누방울을 불어 대었다. 어의궁 좁은 골방으로 돌아와 에케가 사준 초를 켜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잠들었다.&lt;br /&gt;&lt;br /&gt;마야와 짧게 채팅했다. 그리고 검은숲과도 짧게. 마야는 검은숲보다 더 낙천적이었고, 검은숲은 마야보다 더 쓸쓸해 보였다. 검은숲이여, 부디 평안하소서.&lt;br /&gt;&lt;br /&gt;알람과 모닝콜을 무시하고 꿈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였다. 작업을 마치지 못한 채 꿈을 깨니 9시다. 이런! 세수도 하지 않고 대충 옷 입고 출근했다. 자명한 지각이다. 그러나 변명이 있다. 나는 꿈에서 일을 했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77&quot;&gt;200506: 김재영, 바텐더, 몸살, 소백산, 가한과 단연, 호모에렉투스, 고은, 김한승, 나무, 음식공양, 선녀, 분 냄새, 김두식, 데이빗슨의 Truth and Predication, 새로운 복무, 병준, 타투, 송하석과 이병덕&lt;/a&gt;&lt;br /&gt;&lt;br /&gt;타투와 약속 때문에 잠실 평화의 문으로 갔다. 맛 없는 부침과 골뱅이를 먹고, 신부가 되었어야 할 바텐터가 있는 호프에 갔다. 나는 졸면서 그의 다소 지루한 이야기를 들었다. 타투는 그의 이야기를 즐거워 했다. 나의 졸음과 지루함과 그의 즐거움은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lt;br /&gt;&lt;br /&gt;몸살이다.비가 억수처럼 내렸다.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병든 죄수처럼 누워 있었다.&lt;br /&gt;&lt;br /&gt;비로봉과 국망봉을 올랐다. 나는 ㅇ와 ㅁ와 ㄱ의 표정을 카메라에 계속 담았다. 국망봉에서 먼 길을 돌아 비로봉 자락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길 ㄱ을 에스코트했다. ㄱ은 슬립을 신고 등산했다. 등산 경험이 없는 ㄱ. &lt;br /&gt;&lt;br /&gt;자정이 지난 뒤부터 새벽 4시가 되기까지 가한과 단연과 채팅을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lt;br /&gt;&lt;br /&gt;마야는 내가 왜 은둔자가 되려 하는지 물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주었기 때문이라, 라고 말했다. &lt;FONT color=#ff7635&gt;나는 여태 사랑하겠노라고 거짓말을 해 놓고 결국 삶은 상처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이었다.&lt;/FONT&gt; 마야는 물시계 이야기를 했다. &lt;FONT color=#9b18c1&gt;물시계는 내가 진정한 호모 에렉투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냥 생각으로만 현실을 비판하고 궁리하고 상상하면서 누워 있거나 기어다니지만, 나는 당당히 직립하여 그가 원하는 곳으로 보행한다는 것이다.&lt;/FONT&gt;&lt;br /&gt;&lt;br /&gt;고은이는 사랑 중이다. 유지하고 싶은 사랑이 있다.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는 은에게 말했다. &lt;FONT color=#99cc66&gt;삶이 지극히 사소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삶의 의미가 비로소 피어오른다. 그러니까 삶이 사소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lt;/FONT&gt; &lt;br /&gt;&lt;br /&gt;논리학회 독회 뒤풀이. 김한승 선생이 아주 재미난 제안을 했다. 학회에 모일 때 명찰을 준비하는 것. 명찰에 쓰인 것은 헤도니스트, 페미니스트, 자연주의자, 실재주의자, 반실재주의자, 칸티안, 물리주의자 등.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하고 놀자는 것. 모임이 끝난 뒤 자기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간증집회도 하면 좋겠다. &lt;br /&gt;&lt;br /&gt;저녁에는 국립국악원에서 무용을 보았다. 리을무용단의 미친치마 꼴라쥬. 예술의 전당을 산책했다. 오페라하우스 분수에서 음악이 흐른다. 바람이 시원하다. 조명등이 아래에서 위로 나무를 비추고 있다. 그리하여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은 역시 나무이다. &lt;br /&gt;&lt;br /&gt;&lt;FONT color=#ff7635&gt;가한의 &quot;그날 아침의 당신께 드리는 공양&quot;을 읽었다. 그녀의 지극하고 아름다운 음식공양에 내가 눈물이 날 것 같다.&lt;/FONT&gt;&lt;br /&gt;&lt;br /&gt;골방에 돌아와 보니 쓸쓸함에 가득하다. 나는 이 방에 선녀가 잠시 내려와 잠을 자고 있었길 바랐다.&lt;br /&gt;&lt;br /&gt;여자를 만나고 싶다. 살이 그립다. 분 냄새를 맡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lt;br /&gt;&lt;br /&gt;늦게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하얀 나비가 정원을 날고 있고 가라앉은 감정을 환기시키는 바람이 불고 있고 하늘은 맑다. 김두식 선생의 답장이 도착해 있다. 검은 숲이 노크를 한다.&lt;br /&gt;&lt;br /&gt;한여름이 보낸 책이 도착했다. Davidson의 마지막 논문집 Truth, Language and History, 그리고 그의 최초 단행본 Truth and Predication. 데이빗슨은 이 책들의 출판을 지켜 보지 못하고 작고했다. &lt;FONT color=#666699&gt;데이빗슨은 Truth and Predication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논리학자, 이 주제의 챔피언 프레게, 그리고 러셀, 비트겐슈타인, 스토로슨, 콰인 등에 의해 시도되었던, 그러나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난제를 다룬다: 진리의 본성과 술어의 의미론적 역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Truth and Predication을 읽고 있다.&lt;/FONT&gt; &lt;br /&gt;&lt;br /&gt;11년 전 정확히 오늘. 그러니까 현충일 다음 화요일은 내가 해군에 입대한 날이다. 그 날의 당황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께 &quot;다녀 오겠습니다&quot; 한 마디만 남기고 진해로 내려 갔다. 어머니께서는 &quot;오늘 들어오느냐?&quot;고 나에게 물었다. 기초군사학교에서 먹은 밥은 구토할 정도였다. 난폭한 조교들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리고 28개월 후 10월 7일 전역했다. 행복했지만 명예롭지 못한 전역. 오늘은 새로운 복무를 위해 선서를 하는 날이다. 계약서와 서약서에 사인하는 것으로 정식 임명을 마쳤다. 저녁무렵 은빛바다의 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도망갔다.&lt;br /&gt;&lt;br /&gt;준 부부를 만났다. 맛 없는 국수김치말이를 먹은 후, 청와대 올라가는 길 옆 북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준은 살이 많이 쪘다. 아영씨도 처음 볼 때보다 많이 통통해졌다. 보다 낙천적으로 변한 준.&lt;br /&gt;&lt;br /&gt;혜화동에서 타투를 만났다. 밝은 영혼. 그러나 너무 지쳐서 피곤한 영혼. 상처 입어 휴식이 필요한 영혼이었다. 새벽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lt;br /&gt;&lt;br /&gt;일을 마치고 송하석 선생과 이병덕 선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2년 이후 학회에서 이들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송 선생이 약속 때문에 자리를 떠난 후 이 선생과 나는 신촌으로 갔다. 이 선생은 자신의 문학적 감성을 거의 처음으로 나에게 드러낸 듯 하다. 그의 그런 모습이 몹시 보기 좋았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69&quot;&gt;200505: 복수, 첫출근, 에케, 임진각, 커튼, 첼시, 광석, 환송회, 김유신, 신오현, 은빛바다, 조제, 선유도, 폐허, 인터내셔날, 미가, 탱고 같이 슬픈 그녀&lt;/a&gt;&lt;br /&gt;&lt;br /&gt;자정이 지난 시간, 복수에 관한 대화. 그리고 우정과 사랑과 살에 대한 대화. 잠들기 전 뒤척이다.&lt;br /&gt;&lt;br /&gt;오월 마지막 월요일. 첫출근. 새벽 4시에 잠을 깨다. &lt;br /&gt;&lt;br /&gt;나는 이론적 퉁명스러움으로 답변했으며, 선명성의 이름으로 해석적 모호함을 경멸했다. 에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나는 이미 상처를 너무 많이 입은 사람이다. 그린로즈가 끝났다. &lt;br /&gt;&lt;br /&gt;임진각으로 가는 통근열차를 탔다. 자유의 다리 밑에서 김밥을 먹었다. &lt;br /&gt;&lt;br /&gt;따스한 첫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에 커튼이 도착했다. 커튼을 달았다. 방이 너무 좁아 아늑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어수수선한 느낌이다. 그래도 예쁘게 봐준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주문한 것이니까.&lt;br /&gt;&lt;br /&gt;첼시에게 전화가 왔다. 부지런하고 예쁘고 예절 바른 스타일리스트. 이제 그녀는 곧 SUNY에 간다.&lt;br /&gt;&lt;br /&gt;지하철이 막 출발할 때 석이가 눈물을 훔쳤다. 그의 눈물을 보고 나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왜 눈물을 흘려야만 했을까? 그는 나 대신 아파했다.&lt;br /&gt;&lt;br /&gt;에케와 마야와 리환과 서 선배와 환송회를 했다. 고운과 니다와 한여름과 영임과 안생기가 합류했다. 에케, 고운, 한여름, 안생기와 노래방까지 갔다. 고운의 노래가 감미롭다. 에케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가 시칠리아를 떠나는 토토에게 남긴 말을 나에게 상기시킨다. &lt;br /&gt;&lt;br /&gt;부산으로 내려가 김유신 선생을 만났다. 나를 가르친 적이 없지만 가장 고마운 스승. 어떤 이들은 때때로 나를 배제하기 위해 술수를 쓰지만 그는 언제나 나를 불러들이기 위해 골몰한다. 그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실패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나의 무능력이 죄송할 따름이다. &lt;br /&gt;&lt;br /&gt;신오현 선생을 만나는 것은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심정으로 그 장소에 갔다. 동석했던 이죽내 선생은 나를 알아 보시고 악수를 청하신다. 안세권 선생이 나더러 한 마디 하라고 하신다. 나는 한 마디 대신에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애증이 교차하는 스승께 바치는 노래. 양단 몇 마름. 이죽내 선생은 노래에 감동했는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묻는다. 헤어지기 싫어 신경질을 부리시는 신 선생을 남겨두고 나는 정낙림, 임헌규, 서정국 선배와 함께 경북대 북문으로 와 버렸다. 석원호, 강동수 선배가 합류했다. 새벽 5시를 넘겼다. 새벽 공기를 죄다 마셨다.&lt;br /&gt;&lt;br /&gt;은빛바다의 사진을 하드에 업로드하여 보고 있다. 언어를 이제 막 배우는 아이의 천재성과 경이로움을 보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파릇파릇한 새 풀 같았다. 저녁엔 석 선배가 밥을 사주었다. &lt;br /&gt;&lt;br /&gt;리환 선배가 박사학위 논문 공개발표하는 날. 나는 출장 중. 아침 여섯 시에 뜨거운 햇살이 나를 깨웠다. 정오가 다 되어서 조제와 물고기를 만났다. 호랑이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막차를 탔다.&lt;br /&gt;&lt;br /&gt;말똥가리와 선유도를 찾았다. 수명을 다한 하수종말처리장을 리모델링했다. 그 리모델링은 구석기시대의 기법을 사용했으며, 그 기법은 끝내 예술적 아름다움을 창출했다. 녹색 생물들이 버려진 시멘트 더미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했다. 나는 선유공원 설계자들의 미적 감각에 찬사를 보내었다. &lt;br /&gt;&lt;br /&gt;무거운 가방을 매고 청와대 앞을 지나 청운동을 올랐다. 도시 속 폐허를 만났다. 청운아파트. 나는 그곳에서 거의 붕괴 직전 상태의 어떤 잃어버린 자아를 목격하는 듯했다. 그런 폐허 속에서 한두 곳에 불이 켜져 있다. 이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lt;br /&gt;&lt;br /&gt;유선으로 전화가 왔다. 약간 낯선 목소리. 에케였다. 그는 대뜸 영화 Body and Soul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quot;The Communist International&quot;을 들려주었다. 슬픈 기타 소리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우리의 일상을 표상하고 있다. 영속적 패배. 그의 아름다운 열패감에 나는 동감한다. 가르시아 마르스케의 &amp;lt;콜레라 시대의 사랑&amp;gt;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quot;이곳에서는 사랑 때문에 미쳐서 죽는 사람이 계속 있으니 그대는 며칠 내로 그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quot; 나는 내일 인터뷰 때문에 서울 간다.&lt;br /&gt;&lt;br /&gt;미가가 무침회를 포장해서 집을 방문했다. 함께 참외를 먹으며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보았다.&lt;br /&gt;&lt;br /&gt;메이데이. 구름이 안개처럼 스며든 아침. 그리고 샤워하면서 들은 피아졸라의 음악들. 망각Oblivion, 고독Soledad, 천사의 밀롱가Milonga del Angel. 그는 삶이 포도주처럼 행복하다 했다. 슬플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슬프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탱고가 슬프니까. 나는 탱고 같이 슬픈 꿈을 꾸었다. 그리고 탱고 같이 슬픈 그녀를 보았다. 지금 탱고 같이 슬픈 그녀가 생각난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70&quot;&gt;200504: 청각, 봄날, 자위, 조제, 발셈, 이병덕, 문근영, 정아, 봄열병&lt;/a&gt;&lt;br /&gt;&lt;br /&gt;유선전화로 누군가 오랫동안 통화하는 일이 최근 몇 년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거의 세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청각만으로 상호작용하는 것. 그러나 직접 대면하여 시각과 함께 상호작용한다고 해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촉각은 어떤가?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lt;br /&gt;&lt;br /&gt;봄날은 간다. 새벽이 깊었다. 창문을 열었다. 풀빛이 실내로 쇄도한다. 아 풀빛 생기.&lt;br /&gt;&lt;br /&gt;놀자와 에케와 아지트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림 선배의 말. 칸트와 니체는 평생 숫총각을 지냈다. 그들의 지성과 감성을 채워줄 여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니체는 코지마를 흠모했으나 그녀는 바그너에게 마음이 팔려 있었다. 그들은 자위 행위를 많이 했다. 에케는 나에게 충고한다. 혼자 있지 말고 살과 부딪히라고.&lt;br /&gt;&lt;br /&gt;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았다. 나는 아무도 없고 어둑 컴컴한 깊은 바다 속에서 조개처럼 기어다니다가 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야한 짓을 하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네가 나를 떠나면 나는 다시 그 외로운 심연으로 내려가 조개처럼 바다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닐 것이다. 네가 도망친 후 우리는 친구로 남을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 고기를 굽고 있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두고 간 것일까? &lt;br /&gt;&lt;br /&gt;잠결에 들은 아름다운 노래. Ernest Bloch의 Baal Shem. 꿈에서 나는 탐구에 계속 실패하는 연구그룹의 한 연구원이었다. 나는 내 일이 아닌 듯 수수방관하고 있다. 사실 그 탐구주제는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다. &lt;br /&gt;&lt;br /&gt;새벽 4시. 이병덕 선생과 커피를 마셨다. 그의 애정어린 조언들은 나에게 언제나 자극이 된다. 자극을 받아라, 판을 살피라, 시스템을 보라, 시스템을 만들라.&lt;br /&gt;&lt;br /&gt;문근영은 극중 캐릭터로서도 실제 사람됨됨이로서도 몹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부디 통일의 꽃이 되길. 국문학과나 국사학과에 가려 하지 말고 철학과에 가라. 너는 더 위대해야 한다.&lt;br /&gt;&lt;br /&gt;야외박물관 옆 쌍둥이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정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벚꽃이 휘날리고 바람이 피부를 간진다. 아름다운 봄. &lt;br /&gt;&lt;br /&gt;바람 들 것 같은 공포감. 봄바람은 곧 봄열병으로 악화된다. 무서운 계절. 이 계절이 나에게 안전할 때가 오길 언제부터 기다렸던가! 그대 아시나요?&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nownhere.com/oxys/index.php?pl=171&quot;&gt;200503: 순결과 불결, B급 교수, 프레게, 청소, 9할9푼&lt;/a&gt;&lt;br /&gt;&lt;br /&gt;프레게의 수리철학은 순결하지만 싱크대는 불결하다. 그러나 주방을 지키는 이들은 언제나 이 불결함과 부패에 대항하여 싸워왔다. 내 영혼의 싱크대에는 어떤 것이 남아서 시커멓게 부패하고 있을까? 소름이 돋는다.&lt;br /&gt;&lt;br /&gt;B급 교수들은 결코 A급 학자를 임용하지 않는다. 나는 B급 교수들에 의해 결코 임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결코는 언제나 들통나기 쉬운 거짓말. &lt;br /&gt;&lt;br /&gt;접속되지 않은 한 영혼. 그래 일용할 너의 분주함을 나 납득한다. 분명 많이 피곤할 테니 곤히 잠 들길. 난 프레게나 읽으러 가야겠다.&lt;br /&gt;&lt;br /&gt;청소를 했다. 그러나 내 마음엔 청소되지 않은 것이 가득하다. 더 오래 햇살을 쪼이고 환기를 해야 이 묵은 먼지와 습기가 제거될 수 있나 보다. &lt;br /&gt;&lt;br /&gt;K대 xx과 학부생부터, 대학원생, 수료생, 조교, 비정규교수, 전임교수까지 정말 위대하신 분들로 가득 차 있다. 종종 내가 감당을 못할 정도이다. 그들에게 나는 9할 9푼이 썼고, 그들은 나에게 8할은 썼으며 2할은 달았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킬 수 없는 법.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입 안에 담고 있었다. 언젠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삼키든지 뱉든지.&lt;/P&gt;</description>
			<category>철학詩Tea</category>
			<author>(옥시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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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Apr 2007 03:29: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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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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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과학 같은 예술, 예술 같은 과학 &lt;br /&gt;&lt;br /&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lt;FONT color=#666699&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nownhere.com/attach/1/001642.jpg&quot; height=&quot;284&quot; width=&quot;275&quot; /&gt;&lt;/div&gt;푸른 하늘에 번져 가는 붉은 저녁노을, 피어오르는 연기, 집시 같은 양털구름,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 수줍게 흔들리고 있는 연두빛 새싹들, 기하학자가 만든 듯한 고사리 잎, 바다와 하늘을 분간할 수 없는 수평선, 부드러운 백사장 위에 놓인 빙글빙글 소라껍질과 알록달록 자갈.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했다. 과학이 이 아름다움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lt;br /&gt;&lt;br /&gt;그런데 흔히들 자연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무관하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과학은 미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음악과 미술과 문학은 과학자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과학사 전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미학과 예술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거나 접근되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이 과학과 무관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에 대한 앎을 추구하도록 충동하며, 자연에 대한 앎 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nous/index.php?pl=74&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FONT&gt;&lt;/FONT&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칼라풀칼럼</category>
			<author>(옥시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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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Apr 2007 03:28: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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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자메타물리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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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ff0000&quot;&gt;이론과 제안&lt;/SPAN&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양자심리학: 물리학자의 정신과학 &lt;br /&gt;&lt;br /&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최후에 등장할 물리학이 기계론과 원자론으로 복귀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자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이 다시 원자론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현대물리학은 한 지역의 사건 속에, 라이프니츠의 모나드가 그러한 것처럼, 우주전체의 다른 사건이 비국소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은 뉴런 다발이거나 개별 세포들의 집단과 동일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 또는 의식은, 장회익 교수의 표현을 패러디하면, 온두뇌 또는 온몸, 아니 어쩌면 온우주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물리학의 완성은 이 세계 속에 의식 같은 것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문학자는 정신세계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불현듯 자연과학자와 적대적인 입장에 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신세계와 자연세계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급진적 물리주의자가 아니라 지성적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65&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양자측정과 의식: 김 교수께 답함 &lt;br /&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선생님 논문에서는 관찰장치를 관찰자, 주체, 주관, 정신 등과 혼용하고 있으며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치와 의식은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물론 이곳에서는 물리적 대상들과 측정장치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보어는 사물들의 물리적 속성들이 존재한다고 여전히 말할 수 있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그의 전체론을 실재론라 부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양자현상에서 의식의 역할입니다. 위그너의 딜레마는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인 때 측정문제에서 의식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53&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생명현상과 양자얽힘&lt;br /&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나는 양자역학이 하향인과와 목적론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향인과란 상위체계(전체)가 하위체계(부분)에 인과작용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전체로서 두뇌는 두뇌의 개별 뇌세포에 인과작용을 미칠 수 있다. 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몸의 한 세포가 다른 세포와 비국소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확장시키면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유기체의 몸통 전체가 양자역학적으로 서로서로 얽혀 있어, 상위체계가 하위체계에 하향인과작용을 할 수 있을 경우, 그 유기체는 생명을 지니게 되고, 하향인과작용이 상실될 때 점차 생명을 잃게 된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64&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엠페도클레스의 퍼즐과 양자마당이론&lt;br /&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동역학은 다음과 같이 매우 간단하게 도식화될 수 있다. 동역학의 임무는 관측자의 온갖 유형의 정향을 변경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보존정보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존정보가 있는 곳에 불변자(물질)들이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마치 수학적 진리가 있는 곳에 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이, 의사소통이 있는 곳에 의미와 같은 의미론적 대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양자마당이론에서는 입자의 상태뿐만 아니라 환경(포텐셜, 마당)의 상태까지도 파동함수로 표현하고, 그 변동을 (다소 복잡한 해밀토니안을 가진) 슈뢰딩거 방정식의 지배 아래 놓는다. 양자마당이론의 게이지 보존들은 다양한 변환들에서 보존되는 정보들(보존량들)을 설명하기 위해 상정된 것들이다. 따라서 물질과 힘(마당, 포텐셜)은 보존량들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들에 해당한다. 물리적 실체들은 잡다한 현상들이 드러내고 있는 비율적 구조를 추적하는 물리학의 상정체이다. 이 상정체는 물리학이 참된 만큼 객관적이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66&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ff0000&quot;&gt;양자역학 산책&lt;/SPAN&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양자역학이란?&lt;br /&gt;&lt;FONT face=&quot;Century Gothic&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양자역학quantum mechanics만큼이나 기존의 물리적 개념들을 철저하게 붕괴시킨 물리이론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양자역학을 말하지 않고서는 현대과학기술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고체의 거동, 반도체의 원리, DNA의 구조와 기능, 별의 색깔, 레이저의 작동, 초유체의 속성 등 수없는 현상들이 양자역학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서는 해명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양자역학 그 자체에 대해서는 모호한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아주 쉬운 강의를 조금씩 하기로 하겠다. &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24&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ff0000&quot;&gt;Q&amp;amp;A&lt;/SPAN&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전자구름: 전자도 궤적을 가지는가?&lt;br /&gt;
&lt;P align=justify&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nownhere.com/attach/1/461986.jpg&quot; height=&quot;176&quot; width=&quot;170&quot; /&gt;&lt;/div&gt;&lt;FONT color=#666699&gt;신솔문님은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은 전자가 궤적, 즉 이동 경로를 가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자가 궤적을 가진다면, 전자는 동시에 두 위치를 점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분명히 구름처럼 퍼진 채로 핵을 공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 대다수의 양자역학 이론가들은 입자가 궤적을 가진다는 생각을 반대합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입자들이 궤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단지 외견상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겁니다. 양자역학 이론가들은 당신이 던진 공, LA를 향하는 비행기, 지구주위를 도는 달이 실제로 궤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lt;/FONT&gt;&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sis/index.php?pl=116&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666699 2px dott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666699 2px dotte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666699 2px dott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666699 2px dotted; BACKGROUND-COLOR: white&quot;&gt;&lt;FONT color=#d41a01&gt;물리상수의 철학적 의미 또는 신학적 의미&lt;br /&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99&gt;왜 보편상수들의 값은 지적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우주가 될수 있게끔 그렇게 정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조정되어 있는가? 저는 목적론적인 답변을 하고 싶지만, 목적론적 답변을 혐오하는 사람을 위해 비목적론적 답변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답변은 소위 &quot;&lt;FONT color=#d41a01&gt;인간원리&lt;/FONT&gt;&quot;&lt;I&gt;Anthropic Principle&lt;/I&gt;라고 불리는 설명의 원리를 사용합니다. 먼저 다음을 가정해야 합니다: &lt;FONT color=#177fcd&gt;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우주는 다양한 가능한 우주들 중에 하나가 실현된 것이다.&lt;/FONT&gt; 여기서 무수한 가능적 우주들은, 보편상수들의 상이한 값들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현실적 우주는, 무수한 가능 우주들 중에 선택된 것입니다. 이 선택은 매우 우연적입니다. 또는, 가능한 우주들이 끊임 없이 탄생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반복하는지 모릅니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특정한 유형의 가능적 우주가 실현된 것입니다. &lt;/FONT&gt;&lt;A onfocus=this.blur() href=&quot;http://nownhere.com/phyis/index.php?pl=81&quot;&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1px; PADDING-LEFT: 1px; PADDING-BOTTOM: 0px; COLOR: #ffffff; PADDING-TOP: 3px; BACKGROUND-COLOR: #c1c1c1&quot;&gt;모두보기&lt;/SPAN&gt;&lt;/A&gt;&lt;/P&gt;&lt;/DIV&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동향과전망</category>
			<author>(옥시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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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Sep 2005 16:29: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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