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거세지 않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쉬 고 있으며 천천히 시간을타고 여행 중이다. 아직까지는, 현재에 다다르지 못했다. 가슴 한 가운데의 생채기는 그녀의 공허함을 극대화 시킨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리한 공허함을 가슴에 품고 변기에 앉아 멍 때린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이미 늦었음에도 쇼파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면서 온갖 TV 채널을 다 돌려보고는 어제 그 가방 그대로 어깨에 둘러매고 대문을 나선다.
대화 가운데, 가슴 안에서 샘솟는 많은 이야기들은 네게로 전달되지 않는다. 북받치는 감정에 왈칼 열려버린 눈물샘을 봉쇄하기 위해 눈이 아니라 입을 굳게 다문다. 사실 갖가지 잡음에 대응해서 떠오르는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이제 지겹디 지겹다. 온갖 공간에서의 정적은 이미 나에겐 익숙하다. 하지만 음파로 전달되는 커다란 주먹은 나의 가슴팍을 너무 세게 내리쳐서,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숨이 콱 막힌다. 다시 조용해 진다. 이미 나의 일상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뭉개진 찰흙 뭉태기가 되어 있다. 그 속에서 유연하게 나의 눈과 코가 재생될 수 있을까. 아니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할까. 그보다 뭉개져 버린 모습대로 굳어버릴까봐 두렵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외부 자극에 대한 수용체가 하나도 없다면, 식물인간이 된다면, 이 세상에서 격리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럴바에 죽는다면, 없어진다면. 그녀는 움직이는지도 모르게 흐르는 바람 속에 숨는다. 동작을 가진 사람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