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라움과 두려움
페이브먼트 사이에 핀 들국화와,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강아지풀을 볼 때마다 생명의 힘을 느낀다. 달을 향한 인류의 열정은 지구중심을 향한 뿌리의 열정이거나 아니면 태양을 향한 줄기의 열정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이다. 히말라야 삼나무의 노란 송화 분말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영종도 가는 바다 길에서 해수면을 뒤덮고 있는 해송 화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범지구적 번식을 위해 분출하는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보름에 맞추어 일제히 정자를 품어내는 산호초들은 어디에서 저런 힘을 얻었을까?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세계는 온통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심한 독감에 걸렸을 때 나는 실내와 실외를 장악하고 있는 바이러스들에 미묘한 공포를 느낀다. 맨살을 추적하는 모기들의 집요함은 세상의 모든 모기를 박멸하고픈 헛된 욕망을 부추긴다. 아 그리고 탄저균과 에볼라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한편 나는 오래 전부터 육식 동물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약한 동물을 산채로 잡아먹는 육식동물을 볼 때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 공포를 느꼈다. 생명문제는 곧 먹힘으로써 죽느냐 먹음으로써 사느냐의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종종 생명을 더 이상 찬양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자의 죽음을 전제로 한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한, 전쟁과 죽음도 있다. 생명이 없다면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생명현상의 이 공포와 저주를 견디어낼 수 있을까?
2. 상호작용으로서 생명
나는 그 해법을 장회익 선생에게서 처음으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태양계를 생명의 최소 단위로 간주하고 그것을 온생명이라 불렀다. 인간이 오직 자기 생존을 위해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인위적으로 장악하게 될 때,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증식하는 암세포와 같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온생명 내에 기형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가 되지 않기 위해 생명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그의 글을 읽은 후 암세포 또는 암 바이러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다른 세포와 구별되는 암세포의 특징은 이것이 다른 암세포와 세포간 신호를 주고받지 않는 것이라 한다. 생명의 위대함은 암세포의 증식이 아니라 암세포를 이기는 힘에 있다면, 암세포의 신호전달 마비는 생명의 본질에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세포와 신경전달 물질을 주고받는 것, 그리하여 다른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생명의 본질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발상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당화할 수는 없을까?
3. 양자현상
나는 최근 몇 년간 양자역학 해석에 몰두하고 있었다. 양자역학은 데모크리토스 이후 사상과 학문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던 원자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은 낯선 주장이 아니다. 양자역학과 원자주의가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은 전체의 속성이 부분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자주의적 분리가능성 논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양자역학을 진정한 학문으로 간주한다면, 동시에 전체의 속성이 때때로 부분의 속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도 받아들어야 한다. 원자주의의 주장과 달리, 만일 부분들의 성격과 본성이 전체의 속성에 의해 영향받는다면, 그래서 세계가 더 이상 부분들의 집적체가 아니라면, 존재론적으로 우선하는 것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다. 원자는 세계의 한 측면에 불과하고, 그 측면들의 총합은 세계와 동일하지 않다. 세계는 그런 측면들의 종합물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오히려 측면들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전체 세계를 알지 못하는 한, 측면들에 관한 주장들은 그만큼 불완전하고 불충실하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관점은 생명의 정의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나의 이론: 양자얽힘으로서 생명현상
나는 양자역학이 하향인과와 목적론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향인과란 상위체계(전체)가 하위체계(부분)에 인과작용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전체로서 두뇌는 두뇌의 개별 뇌세포에 인과작용을 미칠 수 있다. 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몸의 한 세포가 다른 세포와 비국소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확장시키면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유기체의 몸통 전체가 양자역학적으로 서로서로 얽혀 있어, 상위체계가 하위체계에 하향인과작용을 할 수 있을 경우, 그 유기체는 생명을 지니게 되고, 하향인과작용이 상실될 때 점차 생명을 잃게 된다. 011112pm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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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정의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할 뚜렷한 결론이 나 있지 않지만 현재까지는 survival & reproduction 기준이 가장 그럴듯한것 같습니다.
2006/12/15 04:29이렇게 할 경우 컴퓨터 바이러스도 생명이 될테고..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런것까지 생명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하겠지만 그들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그렇다는것이지 과학적으로 생명이 아니라는게 아니니까 그런 주장은 묵살해도 별 상관이 없을듯 하네요. ^^;;
혹..철학자로서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릴 입장이시라면 후반부의 결론에 이런 부분도 고려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얘길 꺼내봅니다. ^^
그런데 하향/상향 인과성과 부분/전체의 얽힌 상호작용은 굳이 양자역학 레벨까지 내려가지 않더라도 복잡계 과학의 틀에서 충분히 얘기가 되는(또 그 분야야말로 이런 토픽이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내용이 아닌지요?
안녕하세요. 물론 저는 컴퓨터 바이러스이나 법률체계, 경제 등이 생물체라는 표현이 다만 은유에게 그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생명의 본래 의미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법률, 경제 등은 생명이 아닐 것입니다.
복잡계에서 하향 인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답할 수 없음니다. 그냥 복잡계에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두뇌는 두뇌 신경 세포에 영향을 미치지만, 어떻게 두뇌 전체가 그 부분에 인과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원리적으로 해명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양자역학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방문 고맙습니다. 자주 뵈어요.
상위체계와 하위체계의 구분선을 긋는 기준이 궁금하네요. 또한 존재론적 우선 순위를 부분이 아닌 전체에 둔다고 해도, 그 전체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작업은 결국, 부분의 속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2009/03/19 04:39안녕하세요. 물음 고마워요. 이건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물리계를 기술하려면 어떤 공간이 필요한데 물리계의 복잡성이 높을수록 그 공간의 차원이 올라갑니다. 가령 전자 하나의 스핀만을 기술하려면 2차원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전자 두 개의 스핀을 기술하려면 4차원이 필요하고요. 이 경우 상위 체계는 4차원에서 정의되는 체계입니다. 하위체계는 각 개별 전자의 스핀 체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상위체계 속성은 부분(개별 입자의 스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4차원에서 정의된 속성이 하위체계(부분)의 속성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에 관한 좀 복잡한 논문을 오래 전에 썼습니다. 그동안 제 이론을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그냥 놀고 있습니다. ㅋㅋ
아래 논문에 나오는 존재량은 상위체계(전체)의 속성이고, 부수량은 하위체계(부분)의 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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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1. 15, "Ontological Interpretation with Contextualism of Accidentals", 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 37, 490-5.
물리량에 대한 측정 결과가 입자가 측정 전에 가지고 있던 물리적 속성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는 최소한의 실재론은 매우 타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입자의 물리적 속성들은, 측정 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의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통상적 해석에 만족할 수 없어서, 최소한의 실재론을 수용하는 해석, 이름 하여 존재론적 해석을 제안하고자 한다.
von Neumann, Gleason, Bell, Kochen & Specker, Leggett & Garg 등에 의해 제안된, 양자역학과 실재론이 양립할 수 없다는 증명들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실재론의 적용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 우리 해석은 다음을 가정한다. 첫째, 입자는 오직 안겹친 물리량(nondegenerate observable)에 대해서만 측정 전에 어떤 값을 가진다. 둘째, 겹친 물리량(degenerate observable)은 측정 상황이 설정된 후에만 정의될 수 있다. 이런 물리량을 부수량(accidentals)이라 부르기로 한다. 우리의 존재론적 해석은 부수량의 상황론을 가정한다. 각 물리량들의 측정값은 그 물리량의 상황화된 값에 의해 결정된다.